앨범리뷰)서리(30)-THE FROST ON YOUR KIDS

앨범 리뷰

앨범리뷰)서리(30)-THE FROST ON YOUR KIDS

 

Crew(크루)라는 단위의 어원은 한배를 탄 선원을 뜻하지만, 공통의 목적으로 인해서 모인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힙합씬에서 크루는, 같은 크루로서 통일성을 띠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특정 장르를 고집하는 때도 있을 것이며, 한 곡 안에 함께 겪었던 경험담을 녹여내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때도 있다. 심지어 음악 외적으로는 옷을 맞춰 입는 등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서리(30)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Viann(비앙) cjb95의 날이 선 비트는 물론이거니와 Heesoo(그냥 희수), Niwann라는 두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아트워크도 굉장히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단체 앨범은 랩 자체에 치중한 곡들이 많았다. 이전 작 ‘THE FROST ON YOUR HEAD’에서도 벌스 위주로 채워놓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강렬한 랩핑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THE FROST ON YOUR KIDS’는 그와 더불어 다양한 매체에서 차용해온 비유를 곁들여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까지 가미했다.

 

Khundi Panda(쿤디판다), Son Simba(손심바), dsel(디젤), OHIORABBIT(오하이오래빗)이 뱉는 랩은 문장으로서의, 그리고 문맥상의 흐름 하나까지 놓치는 것이 없었으며, 그와 더불어 촘촘한 라임 구조를 갖추고 있다. 첫 트랙 ‘THE FROST ON YOU’에서부터 가정교사 Hit man’에 비유하며 정신개조 교육을 운운하는데, 이 모습은 흡사 지진아를 언급하던 과거의 Verbal Jint(버벌진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컨셉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Hugo’ 속 손심바의 펀치라인이 더욱 눈에 띄는데, ‘딸감들 깐 죄로 난 누명 속에 살며라는 라인에서 버벌진트가 완벽하게 겹쳐 보인다. 이러한 라인의 탄생 배경에는, 두 래퍼 다 비슷하게 IP관련 이슈를 겪었다는 점도 작용을 했으리라. 그리고 해당 라인에 앞서, 자신의 본명을 활용한 대다수의 눈치코치들은 현재가 죽길 바래라는 라인이 해당 벌스 전체의 완성도를 높여준 훌륭한 표현이었다.

 

앨범 속 쿤디판다의 활약도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가로사옥앨범에서 보여주었던 열등감 속에 사로잡힌 모습은 어디 가고 일갈을 일삼는 호랑이가 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골로가 모텔에서는 뻔뻔한게 죄면 난 지금 임펠다운 Lv.6’ 라는 라인을 통해 두 앨범 속에서 보여준 온도 차이를 한방에 설명하고 있다.

 

그에 반해 디젤과 이 앨범 속에서 비유를 가장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생각되는데, ‘골로가 모텔에서 보여준 고길동에 대한 비유, 고드름 세례에서 들려준 하스스톤에 대한 비유 등이 그 예시이다.

오하이오래빗 또한 ‘Ye Chef’에서 고전 드라마 로망스의 명대사를 차용한 라인을 선보였는데, 이는 실소를 자아냄과 동시에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가르침이라는 컨셉을 동시에 보여준 표현이었다.

 

훅이 거의 없이 일관된 주제로 이어지는 트랙들, 그 단조로움을 덜어내주기 위해 적재적소에 변주를 더한 비트들은 프로듀서들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랩 위주로 가득 차있는 탓에 일부 리스너들은 피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너무나도 다양한 비유를 넣은 탓에 해당 비유의 어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어찌 보면 스킷 성격의 트랙이었을 ‘30km/h’ 또한 마이너스로 다가올 수 있는데, 무반주에 가까운 곡에다 짧기까지 한 Easymind의 랩은 상대적으로 밋밋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앨범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음에도 이 앨범을 좋게 들은 이유는, 문학적으로도 높은 문장 완성도를 자랑하는, 라임 위주의 랩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청각적 쾌감을 중시하는 요즘 시대의 랩들은, 그렇기에 잃는 부분 또한 너무나도 많다. 그런 래퍼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몇몇 사회적 현상까지 짚어주는 모습이 나 같은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https://youtu.be/SyNM8oDZ5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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