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늦은 2020년 앨범 리뷰

앨범 리뷰

매우 늦은 2020년 앨범 리뷰

이 글을 작성하기 전, 총 64장의 앨범을 추렸습니다.
그걸 다시 추리고 추려서 총 15장의 앨범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이 앨범은 왜 없나요?'같은 질문을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궤변을 좀 늘어놨습니다..
(아무도 신경 안 쓰셨겠지만..)늦어진 것에 대해서 죄송하고, 나름 최선을 다 해서 썼습니다.
그럼, 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Kitsyojii(키츠요지)-돈이 다가 아니란 새끼들은 전부 사기꾼이야

 

이 앨범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을 주제로 흘러간다. 돈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 거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돈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이 앨범을 이끄는 원동력이자 키츠요지라는 캐릭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첫 트랙 ‘Playstation’에서부터 자신이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관해 설명하며 훌륭하게 밑밥을 깔더니, 이후 트랙들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그 광기를 풀어냈다.
성공시대’의 인트로에서 들려준 샘플링과 동명의 의류 브랜드에서 제목을 따온 ‘Yohji Yamamoto’에서 보여준 워드 플레이는 굉장히 신선했고, 앨범의 타이틀과도 같은 ‘돈이 다가 아니란 새끼들은 전부 다 사기꾼이야’에서 날리는 직언은 굉장히 통쾌했다.
이어지는 ‘춤’과 ‘Moneda’에서는 그 집착이 슬프게 다가왔고, ‘부잣집 딸래미’는 유쾌한 듯 들리지만 한 편으로는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후반부에서는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었다.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가며, 확고한 본인만의 캐릭터를 각인시켰다.

https://youtu.be/7LseD1mCmvc 

JJK-지옥의 아침은 천사가 깨운다

 

그의 지난 4집 ‘고결한 충돌’이 결혼과 아이의 탄생을 그린 앨범이었다면, 이번 작은 한 집안의 가장임과 동시에 MC로 살아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이 앨범은 흐름에 굉장히 집중한 듯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며, 전개를 위한 장치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 핸드폰으로 녹음된 아이의 목소리를 곳곳에 삽입한 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일루와’에서는 빠른 플로우를 활용하여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의 과정을 그린 ‘웃어!’, 집에 돌아온 직후를 그린 ‘번호키 누르면’또한 청자로 하여금 앨범 속 시간의 흐름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위해, Don Sign(돈 싸인)이라는 한 명의 프로듀서만을 앨범에 배치한 점도 굉장히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리고 앨범 속 화자를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받아들일 것을 염려했는지, 자신과 비슷한 애 아빠 래퍼인 Basick(베이식)과 Snacky Chan(스내키 챈)의 피쳐링으로 섭외한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한국 힙합씬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래퍼들도 나이를 먹어갈 것이며, 이 앨범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도 많아질 것이다. 그럴수록 이 앨범은 좋은 선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youtu.be/UHu9YrXhisk

 
Nini Blase-변절자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던 90년대 초반 발매된, 故 마광수 작가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당시 한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성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여대생 ‘사라’가 다양한 이들과 다양한 성행위를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소설의 내용도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이런 선정적인 소설을 쓴 이가 유명 사립대학의 교수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었을 것이다.
당시 이 ‘즐거운 사라’는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되었고,  마광수 작가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 받음과 동시에 ‘즐거운 사라’는 금서로 분류되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故 마광수 작가는 동료 문인들에게도 배척을 받게 되었고, 말년까지 우울증을 겪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Nini Blase(니니 블라세)의 이 앨범은 이 ‘즐거운 사라’와 故 마광수 작가의 삶 자체를 본인에 빗대어, 힙합 씬에서 느낀 염증을 풀어냈다.
 
첫 트랙 ‘뷔페’는 소설 속 ‘사라’의 자아에 빗대어 상상력을 자극하는 비유적인 표현들로 풀어냈으며, 그 속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욕망을 내비친다.
이어지는 ‘씹선비즘’에서는 ‘사라’와 ‘故 마광수’의 자아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향한 평가를 보며 느낀 염증을 냉소적으로 풀어내었다. 그 반면 ‘변절자’에서는 스스로 변절자를 자칭하며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이 앨범의 모티브가 된 故 마광수가 그러했듯이 이어지는 ‘조서(skit)’에서는 재판을 받는 모습을, ‘Swan song’에서는 삶에 회의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90년대에 비해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SNS와 커뮤니티가 발달한 시대 탓에 더욱더 많은 이들에게 노출되어 평가를 당하는 시대이다. 사소한 것에도 진영논리에 휩싸여 편을 나누는 사회 속에서, 예술가와 작품에 내려지는 평가 또한 굉장히 잔혹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故 마광수 작가를 모티브로 한 이 앨범의 메시지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어쩌면 이 앨범은, 매 순간이 평가되는듯한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너무 쉽게 의견을 남기는 리스너들 모두에게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https://youtu.be/h1nO1cQ3QAo

 
Superbee(수퍼비)-Rap Legend 2

 

이 앨범에서 보여준 Superbee(수퍼비)의 메시지는 확실했다. 돈 자랑뿐인 가사라며 폄하를 당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다른 OG 래퍼들을 언급하며 자신도 그런 인정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떠나야’, ‘거울’ 등의 트랙에서 씬에 대한 환멸을 노래함과 동시에 여전히 떠날 수 없음을 동시에 드러내며, 자신을 욕하는 이들이 결국 원하는 삶을 사는 중임을 드러낸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음을 드러낸 이후 트랙 중에서는 특히 ‘물에 빠져’라는 곡이 인상적이었는데, 이후에 싱글로 공개된 ‘양아치’의 ‘돈과 내가 강에 빠지면 돈을 구해라’라는 가사와 대입해본다면 이 곡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전 작들보다 더 직설적인 가사들을 담고 있다. 너무 적나라한 가사들에 혹자들은 오히려 불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절대 밝지만은 않은 본인의 삶을 대입시키며 전체적인 균형을 맞췄다. 항상 밝게만 보이는, 어린아이 같은 그의 겉모습에 비해 절대로 가볍지만은 않은 앨범이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https://youtu.be/Wtf3SMwMqGg



Bill Stax(빌스택스)-Detox

 

한국 힙합씬에서 ‘대마초’만을 주제로 한 최초의 앨범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굉장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닌, 사회운동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대마초에 관해 관심이 전혀 없거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을 만한 요소 또한 다분한 앨범이며, 음악적인 완성도 또한 높은 편이라 단순히 ‘감상’의 목적으로 즐기기에도 충분한 앨범이다.
 
대마의 두 품종인 Sativa(사티바)와 Indica(인디카)의 서로 다른 특성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A면과 B면을 구분한 아이디어나, 마찬가지로 앞면과 뒷면으로 나뉘어 재생되는 특성을 가진 카세트테이프의 발매, 그리고 밀매되는 마약처럼 비닐 지퍼백으로 포장을 하는 디테일까지도 인상적이었다.
청자에게 단순히 듣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선사해주는 앨범이다.
 
하나의 주제로 앨범을 이어가는 것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앨범의 파트를 나눔으로써 지루함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가져다주었다.
A파트, Sativa는 정신적으로 업된 상태를 표현한 트랙들이 포진되어있다.
대마의 매운 연기를 ‘WASABI’에 비유한다거나, 기분이 업된 상태를 공중부양 등에 비유한 ‘허경영’ 같은 트랙을 배치한 것은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들이 아주 많은데, ‘한국거가 아닌거’에서는 ‘Mary Jane’이라는 은어를 사용하여 대마를 여인에 비유했고, ‘Threesome’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였다.
 
반면에 B파트, Indica는 몸이 나른해지는 상태를 표현하였다. 그렇기에 앞선 Sativa에 비해서 다운된 음악들이 다소 포진해있는데, ‘Lonely Stoner’나 ‘답답해’ 같은 트랙은 대마를 경험해보지 못 했거나 혹은 대마에 전혀 관심이 없을지라도 100%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고 생각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것이고, 현대 사회를 바라보며 느끼는 답답함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니 말이다.

https://youtu.be/ILVwUa-_8n0

 
Deepflow(딥플로우)-Founder

 

Deepflow(딥플로우)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이전 작 ‘양화’에 비해서, 이번 ‘Founder’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얘기까지도 담아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사를 풀어간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 첫 트랙 ‘Panorama’에서부터 개인의 역사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고, ‘양화’ 이전의 낮은 인지도였던 VMC를 연이은 세 트랙에 걸쳐서 표현한다.
‘500’, ‘Low Budget’, ‘품질보증’. 특히나 그들의 대표곡 ‘악당출현’의 프리퀄 격인 ‘품질보증’에서는 참여한 맴버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풀어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이 팀이라는 인식만큼은 확실히 심어준다.
 
크루에서 회사가 되는 과정 속 어려움을 노래한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이제는 수익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Big Deal’이나 ‘BEP’ 같은 트랙들도 인상적이었지만, QM(큐엠)과 함께 한 ‘Dead Stock’은 또 다르게 다가왔다. 큐엠의 2집 ‘HANNAH’는 힙합 커뮤니티 내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적자를 면치 못한 앨범이었다. 그런 큐엠에게 선배의 위치에서 조언함과 동시에,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장이라는 위치가 주는 괴리감은 청자에게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크루에서 회사가 된 과정이 담겨있는 만큼, 이 앨범에서는 계산적으로 변해버린 딥플로우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당장에 트랙 제목들만 보더라도 ‘500’, ‘BEP’, ‘VAT’ 등. 그간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리고 앞으로의 청사진까지도 모두 생각해야 하는, 그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앨범이었다.
그런데도 ‘Pretext Interlude’에서 보여주는 팬들을 생각하는 모습과, ‘Blueprint’에서 밝은 청사진을 그리며 마무리하는 모습은 팬으로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대목이었다.
 

https://youtu.be/_DyLFWfqNSM

 

사소미-인셉션

 

비교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아티스트의 4곡짜리 짧은 믹스테잎이다. 성공한 뮤지션이 되고 싶은 열망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닿지 못한 현실. 본인의 이상향을 ‘꿈’에 빗대어 풀어낸 이 앨범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수 많은 젊은 뮤지션들 또한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는 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꿈을 좇는 삶 자체가 남과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난 저들과 다르니 들어갔지 내 꿈속 안에’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내일’은, 여러 두려움을 얘기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두려움, 이 길로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주변의 시선들에 대한 두려움.
바로 이어지는 ‘인셉션’에서는, 그런데도 꿈속에 갇혀버린 자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곡에서는, 갇혀버린 삶 속의 외로움을 노래한다.
세 번째 트랙 ‘입장’은, 이 앨범에서 가장 큰 공감을 자아내는 곡이라 생각된다. 자칭 뮤지션이라고 치부하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취준생’으로 보일 뿐인 현실. 최근 ‘Flowering 4’라는 앨범을 발매하여 평단의 반응을 끌어낸 Kwai의 피쳐링 또한 곡의 분위기를 살려놓기 충분했다.
마지막 트랙 ‘초상화’에서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비꼬는데, ‘내가 지금 하는 소리 내 다음 트랙에서도 못 지키겠지’라는 가사가 매우 무겁게 다가왔다.
음악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뮤지션들의 현실을 그대로 녹여낸 가사임과 동시에, 결국은 영혼 없이 돈만 좇아서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를 꼬집는 가사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뮤지션들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스너들의 외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언급되고, 다른 리스너들도 그것을 찾아 듣게끔 되는 것이 커뮤니티의 순기능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에, 나부터 그렇게 행동하려 한다.

https://youtu.be/oZ8z0NUs-F8

 
Reddy(레디)-500000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앨범들이 유독 많이 쏟아진 2020년이었지만, 이 앨범은 자전적인 것을 넘어서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기까지 했다. 쇼미더머니5를 통해서 많은 수혜를 입었고, 고간지 등 여러 컨텐츠에도 출연하여 하나의 아이콘이 된 Reddy(레디)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면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과거 음악과 더불어 Humantree(휴먼트리)라는 스트릿 편집샵에서까지 투잡을 뛰던 레디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족들까지 책임을 질 수는 없었다.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인 ‘Buried Alive’는 굉장히 중의적인 의미이다. 과거 휴먼트리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던 의류 브랜드임과 동시에, 단어의 뜻 그대로 ‘산송장’과도 같은 본인의 삶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음악만 하면서 살고 싶었지만, 결국은 돈이 필요했다.
 
투잡, 말 그대로 두 개의 삶을 살아낸 레디였다. 그렇기에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노력해야 했지만, 그런데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면 위 (The Surface)’와 ‘치트키 (Cheat Code)’는 이 앨범에서, 그리고 레디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얘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수많은 억측을 낳았던 코홀트 탈퇴에 관한 얘기,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는 달랐지만 결국에는 쇼미더머니에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쩌면 앞선 트랙들의 서사는 이 두 곡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도 싶었을 정도다.
 
쇼미더머니는 역시 양날의 검이었고, 몇몇은 그에게 변했다고 손가락질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이면의 성공은 달콤했다. 아주 잠깐은.
‘Baby Driver’에서는 그 성공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풀어냈는데, 그 과격함 뒤에 이어지는 ‘No Worries’와 ‘Fade Out’이라는 트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마지막 두 트랙은 현재의 시점에 돌아와서 이제는 걱정 없이 살고 싶다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앞선 트랙에서 잠깐의 성공에 취했던 자신의 모습을 아주 과격하게 풀어내었기에, 다시는 그런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음을 나타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대부분의 앨범과는 달리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사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일부분 불러주고, 과거의 얘기를 풀어낸 뒤에는 그것보다도 더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정신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앨범을 끝까지 돌린 뒤에 다시 첫 트랙을 재생한다면 ‘아. 이래서 이렇게 풀어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여러 번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앨범이고, 감상하는 맛이 있는 앨범이다. 여러모로 2020년 한 해 가장 과소평가된 앨범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https://youtu.be/dPWtwpukNpY

 

킹치메인- 시대정신

 

2020년 한 해 동안, 킹치메인의 행보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지난 과오들을 돌아보는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알리기도 한 첫 정규 ‘오메가’에서부터, 반고흐와 합작하여 기존에 보여지지 않았던 신선한 사운드로 청자들의 귀를 자극한 ‘붉은 포도밭’까지.
하지만 그것들에 앞서서 발매된, 그의 일곱 번째 믹스테잎 ‘시대정신’ 또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Verbal Jint(버벌진트), TakeOne(테이크원), 그리고 Justhis(저스디스)의 오마쥬가 가득 담긴 이 믹스테잎은, 돈과 여자만을 노래하기 바쁜 지금의 힙합씬에서 작품성을 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앨범 속에서 제시하는 ‘시대정신’, 그 방법론은 앞서 언급된 뮤지션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씬 속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포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뿌리’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들이 이 앨범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앨범의 시발점은 아마도 테이크원의 ‘녹색이념’, 그리고 그 이후에도 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테이크원을 향한 존경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The Grind 2’에서는 테이크원의 이전 랩네임인 ‘바보’를 활용하여 자신은 멍청하지 않으며, 동시에 단순히 테이크원의 카피켓이 아님을 드러내는 펀치라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믹스테잎 곳곳에 테이크원의 인터뷰를 샘플링한 것도 그에 대한 킹치메인의 존경심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암전’에서 보여준 방법론은 테이크원의 그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테이크원은 본인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시대정신을 제시한 버벌진트에 대한 존경과 지금은 다소 변해버린 것에 대한 원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 또한 변해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일부 담아내고 있으며, 이 앨범 이후에 보여주는 그의 벌스들에서는 ‘변화’와 ‘타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에 비해 킹치메인은 그 둘 모두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 또한 누군가의 지침이자 나침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냄과 동시에, 테이크원의 ‘암전’을 들은 본인이 그러하였듯이 이 곡을 들은 누군가에게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특정 대상들에 대한 오마쥬,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녹여내기도 한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트랙 ‘막다른 길’은, ‘나무는 끝이 시작’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곡을 다 들은 뒤에 그의 다음 작품인 ‘오메가’ 앨범을 연달아서 듣는다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본다.
https://soundcloud.com/realveggie/10-close?in=realveggie/sets/ejlvfjxicio4

 

 

10. 암전

Original Song by 김태균 - 암전 Mixed & Mastered by @lifeofvangogh 무지와 질투 그리고 시대착오 역사적 반동세력들과 난 닮아있어 누군가의 눈에 누군가의 눈엔 나 또한 순간이겠지 지금 이 문화에 있어 이

soundcloud.com

 

Swervy(스월비)-Undercover Angel

 

이 앨범이 나오기 이전의 Swervy(스월비)에게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매우 실례겠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이 앨범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로 인해서 겪은 혼란들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하나의 작품으로 녹여내었다.
 
첫 트랙 ‘Alibi’는 추상적인 가사들로 채워졌지만, 이 앨범 전반에 걸친 감정선의 포괄과도 같은 트랙이다. 이 곡에서는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내면의 자아가 추락하였고, 이어지는 ‘Did it like I did’에서는 새로운 자아가 확립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지는 ‘천수경’과 ‘Mama Lisa’에서는 자아의 확립에 있어서 스월비의 어머니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는데, ‘뺨을 한 대 맞음 목을 뽑고 와’같은 강렬한 가사도 인상적이었고, 마지막에 삶의 시련을 레몬에 비유한 부분은 비욘세(Beyonce)의 6집 ‘Lemonade’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앞선 트랙들이 사회를 맛보기 이전의 스월비를 담아냈다면, 이어지는 ‘왜 이래’서부터 ‘GOMP’ 까지는 삶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달은 뒤에 느낀 혼란을 표현한다. 지나친 관심 탓인지 갇혀버린 듯한 느낌도 받았고, 그 감정을 사치스러운 소비로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GOMP’에서 ‘감정은 내 집 앞 전당포에, 내 청바지랑 걍 바꿨네’라는 구절이 굉장히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곧바로 이어지는 ‘YAYA2’가 다소 뜬금없이 다가오기도 하지만, 아픔을 딛고 현실로 돌아왔음을 표현한 전개라고 생각해보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트랙. 그리고 ‘파랑’은,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들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랑’은 동시에 추락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카루스처럼 너무 높이 날다가 오히려 바닷속으로 추락해버린 현재에 더욱 큰 위안을 얻는다는 일종의 비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2번 트랙이었던 ‘Did it like I did’의 리믹스로 마무리가 되는데, 추락을 겪음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확립했음을 청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확실한 앨범의 컨셉과 총괄 프로듀서 SUI(수이)의 주도하에 만들어낸 유기적인 흐름은 결국 리스너들과 평단의 극찬으로 이어졌고, 여러 시상식의 후보에도 오를 정도의 음악적 성과를 이뤄냈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이 앨범이 첫 정규이기도 하다. 그만큼 미래가 창창하다는 뜻이니, 앞으로의 음악들에도 기대를 걸어본다.

https://youtu.be/YNXW9mxsLqI 

B-Free(비프리)-Free The Beast

 

그간 여러 논란을 일으켜왔던 B-Free(비프리)지만, 그의 커리어 하나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뛰어난 프로듀싱 능력과 더불어서, 어떤 비트라도 그에 최적화된 랩을 선보이는 아티스트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는 항상 다양한 도전을 즐긴다. 이전 작 ‘Free From Hell’에서는 한국에서는 다소 낯선 장르라 할 수 있는 Memphis Rap(멤피스 랩)을 선보이더니, 이번 ‘Free The Beast’는 한국적인 샘플링을 가미하여 청자들이 보다 새로운 경험을 느끼게 했다.
 
Beast. 말 그대로 짐승이라는 뜻이다. 비프리가 음악 외적으로 일으킨 사고들을 보며, 혹자들은 ‘개새x’라며 욕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그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보며 ‘본능적이다, 마치 짐승과도 같다’ 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앨범 제목부터도 이런 중의적인 의미로 짜여있음은 물론, 앨범의 프로덕션 또한 굉장히 치밀하게 느껴진다. 앨범의 참여진들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줌은 물론, 가사적으로도 이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그의 공상일 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드라큘라 2020’에서 굉장히 도드라지는데, 드라큘라에 빙의한 듯 무서운 말들로 뱉어내는 가사가 사실은 펜타닐을 뜻하는 은어들로 가득하며, 치료용이 아닌 마약으로써 남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가사이니 말이다.
 
이렇듯 굉장히 치밀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다가도, 때때로 굉장히 즉흥적인 면도 보여준다. 제목에서부터 프리스타일임을 암시하는 ‘돈내 즉흥곡’에서부터, 비프리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작업 영상을 통해서 ‘부활절’에서 Munchman(먼치맨)의 벌스 또한 굉장히 즉흥적으로 만들어졌으며, 비프리의 작업 방식 역시 굉장히 즉흥적임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에 대해서 ‘유기적’이라 하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사운드적인 통일성은 가지고 가되, 각각의 주제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앨범이 명반으로 평가될 수 있는 이유는, 앨범의 타이틀과 언행일치 되는듯한 동물적인 퍼포먼스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즉흥성을 띤 앨범 자체가 그간의 내공과, 샘플링과 믹싱으로 단점을 희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https://youtu.be/Wpsx0hDPdxA

 

사족을 붙이자면, 어지간한 사클 래퍼들이 함부로 따라 할 수 없는 앨범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Uneducated Kid(언에듀케이티드 키드)-HOODSTAR 2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전 작들의 부진을 한 번에 털어버린 앨범이었다. 소위 ‘기믹 래퍼’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Uneducated Kid(이하 언에듀)는 단연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서 더 이상 과한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음을 깨달은 듯했다.

 

이번 앨범에서도 물론 그의 이전 작들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졌다면, 너무 많이 버는 탓에 이제는 자신의 소비 방식만 언급했을 뿐인데도 충분한 인상을 선사해준다는 것이다. ‘BMW’, ‘first class’ 같은 곡이 예전에 나왔다면 그저 뻔한 곡으로 다가왔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미 그가 이뤄냈다는 것을 리스너들도 인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앞서 언급한 두 트랙 사이에 배치된 ‘Full of Pain’을 통해서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놓음과 동시에, 자신의 과소비를 정당화시켰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엄마의 삶,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을 통해 완성된 삶의 방식을, 왜 그렇게까지 허슬하며 열심히 돈을 버는지에 대한 이유를 리스너들에게 납득시키는 트랙이었다.

언에듀의 커리어 초반에도 ‘우리 엄마 노래방 도우미 그리고 우리 아빠 대리운전’이라는 가사로 가족에 대해 짧게 언급하기도 했었지만, ‘기믹 래퍼’라는 그의 이미지 탓에 진정성이 다소 희석되었던 부분도 있었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 언에듀는 비로소 본인의 캐릭터를 100%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전 작보다 짧아진 러닝타임으로 인해 지루함을 덜어냄과 동시에, 본인의 이미지가 과하게 소비되는 것에 대한 제동장치의 역할도 해냈다. 이전보다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도 굉장한 플러스 요인이었고 말이다. 여전히 멍청한 가사투성이고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이번 앨범은 그답지 못하게(?) 굉장히 똑똑한 앨범이었다.

 

https://youtu.be/BA8rENk8KVs

 

Khundi Panda(쿤디판다)-가로사옥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굉장히 거칠고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타 장르에 비해서 매우 경쟁적이고, 그렇기에 ‘디스’라는 수단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MC의 기본 소양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있다. 흔히들 스웩이라고 표현하는 자기과시야말로, 힙합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기 바쁜 장르에서,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대부분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부정, 혹은 그걸 넘어서 스스로를 깎아 먹는 행위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등감이 오히려 득이 되는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Black Nut(블랙넛)을 예로 들 수 있겠고, 지금 언급할 Khundi Panda(쿤디판다)의 ‘가로사옥’ 또한 훌륭한 예시라 할 수 있겠다.

 

이 앨범에서 열등감은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앨범 전체적으로 여러 번 언급되는 ‘지훈이’라는 인물도 있겠지만, 이 씬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열등감, 그에 대한 대상은 조금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 번째 트랙인 ‘네버코마니’가 그 열등감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상대가 쿤디판다에게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임과 동시에, 스스로 정한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정작 그 상대가 의식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쟁과 보상에 의식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이어지는 ‘자벌레’, 그리고 ‘양심트리거’에서 드러내는 계산적인 모습과 피해의식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드러낸다. 특히나 ‘양심트리거’의 ‘내 이타심의 근본 바닥은 이기심에서’라는 구절은 마치 FANA(화나)의 ‘가면무도회’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자아 비판적 성향과 사회 비판적 성향을 동시에 띄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뇌리에 깊게 남는 라인이었다.

 

5번 트랙 이후의 전개가 굉장히 드라마틱한데, ‘향바코’에서는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향한 샤라웃과 더불어 ‘낭만’에 대해 노래하며, ‘겟어웨어’는 열등감에 빠져있던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다.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에서는 자신이 품었던 낭만이 현실이 된 듯한 감정을 느끼고, 마지막 트랙 ‘집’에서는 자신이 느꼈던 혼란을 하나의 방으로 표현하며, 이 앨범의 제목이 왜 ‘가로사옥’인지를 청자들에게 인지시켜주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의 열등감은 남겨두고 있다고 느껴지는 구절들도 종종 있는 것으로 보이며, 쇼미더머니9 경연곡이었던 ‘뿌리’에서 ‘그래서 만들어낸 소문은 범지구적으로 퍼져’라는 구절로 다시 한번 확인사살을 시켜준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열등감은 여전히 쿤디판다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이 앨범 초반과 후반의 쿤디판다는 분명 한 단계 더 성장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집’에서, ‘나의 결핍도 나인걸 이제는 알고 있지’라며 인정하는 모습이 그러한데, 더 이상 하나의 방에 갇혀있는 모습이 아닌, 새로운 문을 열며 다음 방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해준다. 그것은 곧,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MC로서 발전했음을 보여준 것이며, 앞으로도 그는 끊임없이 발전해나갈 것이다.

 

https://youtu.be/rdf6ZTAcJjc

 

QM(큐엠)-돈숨

 

2020년 한 해, VMC 멤버들이 내놓은 음반에는 변화를 인정하는 모습들이 많았다. 일부 래퍼들의 상업적인 모습을 비판하다가, 결국 본인들도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 답변을 함과 동시에, 비록 방송물 좀 먹었어도 자신들은 여전히 랩을 하는 MC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QM(큐엠)의 ‘돈숨’또한 이전과는 달라진,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다만, 앞서 발매된 Deepflow(딥플로우)의 ‘Founder’나 넉살의 ‘1Q87’과는 경우가 다르다.

 

이전의 큐엠을 떠올려보면, 돈을 좇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다. 그가 속한 크루 ‘보석집’을 떠올려보더라도, 가사로 세상을 바꾸기 원하는 리릭시스트 집단이 아니었나.

비록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그는 리스너들과 평단의 인정을 얻어냈다. 아주 잠깐은, 그는 학창 시절 수련회 버스 ‘뒷자리’에 앉은 것만 같은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앨범의 특징 중 하나는, 타이틀곡이 무려 4곡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4곡은 3~6번 트랙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만큼 이 트랙들의 전개가 이 앨범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중 3번 트랙 ’36.5’는, 돈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 변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주고 있다. ‘아이디 옆에 파란 멍 들고 내 글이 기사화돼도 병원 보호자 서명 무직인 직업란’이라는 가사 한 줄이 주는 무게감은, 이 앨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크게 다가왔다. 펜데믹 상황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단순히 ‘일을 잃은 상실감’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현실이었다. 이 곡을, 그리고 이 앨범을 만들게 된 이유에 ‘만약 자신이 조금 더 유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원망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섬에 갇힌 듯 묘사하는 것은, 특이해 보이는 래퍼의 삶 또한 결국 특별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카누’의 훅, ‘살든가 죽든가 결국엔 존나게 저어야 해 노’ 라는 가사와, ‘숨만 쉬어도 돈 나가 100만’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돈숨’의 가사가 그러하다. 공연으로 벌어먹던 직업군의 특성상, 코로나 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르다고는 하여도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 누구보다 힙합을 사랑하는 그였지만, 결국 힙합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가성비’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대상이 아마도 힙합인 듯한데, ‘내 팔뚝에 문신이 없는걸 보니 난 쳐본 적이 없나 봐 배수진’이라는 가사는 자기 자신을 때리는 펀치라인이었을 것이다. 이는 국힙의 클레식 중 하나인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의 MC Meta(MC 메타)의 가사, ‘정말로 음악에 난 모든 것을 던졌지? 거짓말! 그 반의 반의 반만 걸고 딴 데 걸었지’와도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다시 섬’에서는 결국 면접을 보는 내용도 나온다. 자신이 있던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을 향해보지만, 결국 그 세상도 바다 위에 갇혀있는 섬일 뿐이라는 비유. 어찌 보면 굉장히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HANNAH만큼은 절대로 못 쉬게 할 돈숨’이라는 가사는, 어쩔 수 없이 변화를 꾀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다짐처럼 느껴진다.

 

다른 곳에서 본 평이지만 그대로 가져오자면, 이 앨범은 코로나 시국의 젊은 래퍼들을 위한 찬가라 칭할만하다. 코로나로 인해 변해버린 시대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앨범임과 동시에, 단지 큐엠 개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지’라는 말로 귀결될 수 있을 듯하다. 그렇기에 때로는 100마디 위로보다, 한 마디 푸념이 더욱 크게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이 앨범은 그저 개인의 푸념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가장 큰 위로이기도 하다.

 

https://youtu.be/QjeiO_y3VgU

 

Don Malik(던말릭)-선인장화 : MALIK THE CACTUS FLOWER

 

‘사막의 선인장은 살아남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웠다’라는 앨범의 소개야말로, 그 어떤 수식어보다도 이 앨범을 잘 설명하고 있다. 지천에 흔하게 널린 민들레도 아니고, 강렬한 붉은 빛의 장미도 아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피워낸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혹자들은 ‘100년에 한 번 피어나는 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유는, Don Malik(던말릭)의 삶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처음부터 삭막한 삶을 바란 이는 없었을 것이다. ‘얼마냐’ 에서는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계산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같은 옷’에서는 어떤 옷을 입는지가 자신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이어지는 ‘Rainy day’에서는 ‘돈이 전부가 아냐 라고 말하려면 돈이 필요해’, ‘삶이 먹고 사는 것과 같은 말 된 그 시점,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갈증’이라 말하는데, 이는 결국 남과 다른 듯 보이는 자신의 삶도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20180222-20180930’. 아마도 던말릭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그는 가해자로 몰렸지만, 결국은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 시간 속에서 그는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고, 그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시련은 그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고, 많은 가치관을 바꿔놨다. 이 곡에서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기억은 남겠지만 삶은 순간인 걸, 너의 그 찰나에 내 곡이 있었으면 해’라는 구절이 매우 크게 다가왔는데, 이 곡을 듣는 이들의 삶에 그가 자리 잡고 있는 만큼, 던말릭의 삶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팬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Sunrayz (3rd)’에서는 그의 삶 속 또 다른 풍파였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서와 사랑, 그리고 약간은 남아있을 증오를 쏟아내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며, 다음 트랙 ‘폭탄’에서도 이어진다. 주제만 달라졌을 뿐.

‘전염 (Til Infinity)’는 힙합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곡이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담아낸 라임 안에, 자신을 바꿔놓은 선배들에 대한 동경과 변해버린 누군가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다. 이 곡에서 보여준 그의 랩 스킬이 어떠한지, 이 한 곡에 들어간 레퍼런스와 이름들이 몇 개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 앨범을, 혹은 이 곡을 들은 이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 문화를 아껴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큰 것 같다.

이제는 올드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것이 ‘붐뱁’이고, 끊임없이 유행이 뒤바뀌는 씬 안에서 올드한스타일을 오히려 발전시켜나가며 자신만의 것을 만드는 던말릭의 모습. 그것이 이 앨범에서 의미하는 또 다른 사막일지도 모른다. 그 삭막해진 땅 위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 결과 자신만의 색을 갖춘 꽃을 피워냈고, ‘누군가 (Outro)’에서는 자신이란 꽃을 보며 자라난 누군가가 자라나 또 다른 꽃을 피워내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이하게도 이 앨범은 아웃트로가 두 개이며, 제목마저 서로 도치를 이루고 있다. 앞서 말했듯 자신의 삶 자체를 사막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변해가는 힙합씬 안에서 꿋꿋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사막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인장은 하나의 씨앗에서 두 개의 떡잎으로 갈라지는 쌍떡잎식물이다. 결국 마무리까지 앨범의 컨셉을 잘 지켰다고 할 수 있겠다.

 

https://youtu.be/x9ouG0vN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