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연말결산

앨범 리뷰

2021년 연말결산

해당 결산작들은 순전히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건 왜 없어요?'라고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면, 그건 당연한거고 그 생각도 맞는거죠.
해당 글에 적힌 숫자는 발매된 순서에 따른 것이며, 순위는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현생이 바빠 글을 늦게 올리게 된게 뭔가 쪽팔리네요.
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1. Lil tachi-Forever 0

Lil tachi(릴타치)의 지난 정규, ‘Boombap Mixtape’은 ‘트랩 특유의 날것의 매력을 잘 보여줬다’는 평을 얻었지만, 29곡이라는 방대한 구성 탓에 ‘정신없다’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은 앨범이었다. 그에 반해, 첫 정규 이후 약 1년만에 내놓은 이번 ‘Forever Young’은 이전 작품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심어주었다. 간결한 러닝타임과 더불어 유기성까지 갖춘 이번 앨범은, 이전보다 성숙해졌다는 인상까지도 심어줬다.

마무리는 다소 아쉬웠지만, 이전보다 다양한 시도 속에서 성숙해진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픈 앨범이다. 이 앨범이 만들어지는 데에 보이나타의 죽음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그로 인해 방황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이전 작에서 보여진 모습이 아직은 어린 릴타치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작에서 보인 모습은 상처를 극복하며 한 층 성장해나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앨범의 타이틀처럼 영원히 젊을 수는 없겠지만, 상처를 딛고 남은 젊음을 조금 더 즐기며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19645516

2. 서리(30)-THE FROST ON YOUR KIDS

Crew(크루)라는 단위의 어원은 한배를 탄 선원을 뜻하지만, 공통의 목적으로 인해서 모인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힙합씬에서 크루는, 같은 크루로서 통일성을 띠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특정 장르를 고집하는 때도 있을 것이며, 한 곡 안에 함께 겪었던 경험담을 녹여내며 유대감을 형성하는 때도 있다. 심지어 음악 외적으로는 옷을 맞춰 입는 등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서리(30)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Viann(비앙)과 cjb95의 날이 선 비트는 물론이거니와 Heesoo(그냥 희수), Niwann라는 두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아트워크도 굉장히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무엇보다 이들의 단체 앨범은 랩 자체에 치중한 곡들이 많았다. 이전 작 ‘THE FROST ON YOUR HEAD’에서도 벌스 위주로 채워놓은,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강렬한 랩핑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THE FROST ON YOUR KIDS’는 그와 더불어 다양한 매체에서 차용해온 비유를 곁들여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까지 가미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음에도 이 앨범을 좋게 들은 이유는, 문학적으로도 높은 문장 완성도를 자랑하는, 라임 위주의 랩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청각적 쾌감을 중시하는 요즘 시대의 랩들은, 그렇기에 잃는 부분 또한 너무나도 많다. 그런 래퍼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몇몇 사회적 현상까지 짚어주는 모습이 나 같은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19757695

3. unofficialboyy, HAIFHAIF-그물,덫,발사대기,포획

길거리에서부터 시작한 unofficialboyy의 크레딧, 그리고 자신을 길거리에서부터 끌어올려준 JJK에 대한 리스펙까지 모두 챙긴 ‘누가왔게’와, 다시 한번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듯한 ‘unofficialboyy pt.2’, 단순 본인들 팀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어리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해왔음을 알리는 ‘대가리’를 연이어 배치시킨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누가왔게’에서는 JJK 본인의 이름의 뜻에 대한 루머(일명 자x킹)를 유쾌하게 풀어낸 가사가 인상적이었으며, ‘대가리’에서는 현시대 래퍼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선배 뮤지션들을 언급하며 리스펙하는 모습을 같이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앨범의 제목이자 이 앨범의 타이틀 중 하나인 ‘그물,덫,발사대기,포획’은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긴장감 넘치는 훅과 베이스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 훅마다 드럼 소스가 추가되는 구성, 벌스 중간중간 브레이크가 걸리는 부분까지도 굉장히 치밀하게 짜인 듯했다. 랩도 랩이지만, HAIFHAIF의 프로듀싱 능력이 빛을 발한 트랙이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0278912

4. 키드밀리(Kid Milli), dress-Cliché

(라이너 노트를 통해서 제시된 순서에 따라 감상하였고, 글에 적은 트랙의 순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버퍼링 플로우’라 불리며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랩을 뱉는 사운드클라우드 래퍼들을 양산했던, 그리고 홍대 거리를 본인의 패션으로 물들였던 이의 입장에서, 이미 진부해진 것들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 ‘진부해진 것’에는 이전에 자신이 보여준 예술 또한 포함이다.

첫 번째 트랙인 ‘Leave My Studio’에서부터 그는 지친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일부 가사에서는 은퇴를 암시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어지는 ‘Face & Mask’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답습하면서도, 일단 살아남고 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앨범은 세 번째 트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Intro’로 접어드는데, 앞선 곡에서 했던 고민이 계속 이어지는 듯 보인다. 머릿속의 음성을 표현하는 듯, 튠을 먹인 다양한 음정으로 쏟아지는 가사들을 청자의 혼란을 일으킨다.

이어지는 ‘Challenge’는 이 앨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역사에 있어서 한때는 그를 따라 했다는 누명을 쓴 누군가와 비프를 주고받기도 했었고, 한때는 그의 패션은 홍대 전체를 물들였다. 그렇게 유행을 만들었던 입장에서, SNS상에 유행하는 첼린지들은 굉장히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웃긴 점은 거기부턴 다 세워 대 자존심/전부 부업이라며 다 혼자 제 발을 저리는데’, ‘몇 년짼지도 모르지만
니가 하는 shit관 너무 다른 짓’ 등의 가사에서 다른 이들과 섞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키드밀리와 섞이기를, 혹은 키드밀리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것이 사실이다.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진부하지 않은 것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압박하는 면모 또한 앨범 곳곳에 비친다. 그렇기에 몇몇 트랙 속에서 비치는 모습은, 굉장히 지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Bittersweet’과 ‘Bankroll’ 등의 트랙에서는 휴식과 일을 동일시하며 소비 또한 일처럼 느껴지는 모습을 보이고, ‘Cliché’에서는 물질만능주의적 소비 행태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난 다 잃었지’라 말한다. 그렇게 내내 지쳐가는 모습을 보이는 앨범은 후반부인 'Midnight Blue'와 'Outro'에 들어서야 비로소 휴식을 취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진다.

예술뿐 아니라 삶 자체에서도 진부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 그리고 이미 진부한 것을 보여주는 몇몇을 향한 비판. 자신의 삶에 대입하여 진부한 것들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지만,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화자와 같은 고민을 해보기를 권유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더라도, 진부해지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5. 김태균 (TAKEONE)-상업예술

*해당 리뷰는 완전판 발매 이전에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사랑 이야기를 중점으로 흘러가는 이 앨범 속에서 힙합에 관해 이야기하는 ‘홍대’가 다소 뜬금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개화’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전 여친에 대한 미련과 욕망 때문에 ‘당산’에서는 성관계를 갖고, 질병 때문에 아파하는 자신을 돌봐주는 전 여친에게 ‘널 만나 보여주려던 게 이게 아니잖아’라며 스스로 떠나보낸다. ‘홍대’에서 본인을 ‘찌질이’, 혹은 ‘병신새끼’라고 언급하는 부분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일 것이고, 그런데도 ‘왕’이나 ‘제일의 악당’이 된다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만큼 찌질하거나 병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중의적인 표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 믿지 않는 교회에 따라가는 모습을 그린 ‘청담’이나, 집으로 대려다준 뒤에도 미련하게 주변에서 기다리는 집착을 보여주는 ‘정자’ 같은 트랙도 이전의 테이크원에게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그 끝은 이별이었음을 그린 ‘종착역’이나, 제목과는 정반대로 평화롭지 못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평화’, 증오와 질투에 뒤섞여 억누르던 모든 것을 표출한 뒤, 투신자살을 암시하며 마무리되는 ‘자유’까지 이어지는 전개가 극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극을 전개하면서, 곳곳에는 굉장히 치밀하게 복선을 숨겨두었다.

특히나 ‘종착역’에서 ‘백만원, 이백만원, 삼천만원’을 언급하는 부분은 앞선 ‘강남’에서 ‘셋 둘 하나’하며 헤아리던 부분과도 대비되며, 마지막에 ‘잘 지내’라는 음성은 ‘개화’의 마지막에 언급한 ‘잘 지내’와는 다른 무게감을 준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0354423

6. 쿤디판다(Khundi Panda)-MODM : Original Saga

소재와 앨범 소개만을 보고 생각했을 때는, 매우 가벼운 앨범일 것이라 여겨졌다. 처음 한 바퀴 앨범을 돌려봤을 때는, 그저 게임 속 타격감을 떠올릴만한 랩 스킬을 뽐내는 앨범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여러 번 돌려볼수록, 생각보다 치밀한 앨범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재건축’이나 ‘가로사옥’에서 보여주었던 무게감과 진중함은 덜할지라도, 절대로 저평가할 앨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앨범 소개에서 ‘이야기를 내 얘기로 받아들이든 소모즈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든 그건 자유’라고 말한 것 또한, 가볍게 즐길 수도, 혹은 이전 작품들처럼 쿤디판다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며 즐길 수도 있음을 나타낸 중의적인 의미였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그의 Next Stage는 과연 어디일까가 궁금해진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0447175

7. 한국사람-한(恨)

이 앨범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난 1집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꿈을 좇다, 때로는 꿈에 잡히기도 하고, 다시 꿈을 좇는 과정을 굉장히 복잡하게 그려낸 앨범이었다. 그리고 이번 ‘한(恨)’에서도 꿈이나 환상 같은 소재가 빈번히 사용된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말하는 꿈은 대부분은 사랑의 대상을 비유하는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환상1899-0893’은 다소 충격적인데, 힘든 일을 겪는 연인을 귀찮아하며 모진 말을 내뱉는 모습을 보인다. ‘빠져나갈 수가 없는 꿈을 꾸고 있다면, 그 꿈에는 무얼 잊나요 그 꿈속 뭐가 있나요’라는 구절과 ‘환상’이라는 제목을 통해, 꿈이나 환상처럼 결국 관계가 깨져버린 상태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특이한 것은 ‘1899-0893’이라는 번호는 마약 퇴치본부의 전화번호라는 점인데, 앞서 ‘癌人월드!’에서 ‘암 같은 사랑’이라 비유했듯이 마약처럼 강렬한 사랑이었다는 비유일지, 아니면 ‘나의 왕’이라고까지 표현했던 연인을 약에 비유한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0691008

8. 비앙(Viann), Son Simba(손 심바)-전설

누군가에게 전설이라고 불리기까지, 스스로를 전설이라고 말하기까지는 많은 서사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이는 죽은 후에야 전설로 불리며, 어떤 이는 그저 하나의 밈처럼 자신을 전설로 포장하기도 한다.

해당 앨범에서 쓰인 전설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이 앨범 안에서 전설은 인간을 구분 짓는 하나의 유형일 뿐이며, 해당 앨범에는 전설뿐 아니라 ‘개’, ‘사람’, ‘귀신’과 같은 다양한 유형이 등장한다.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보면, 사람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 그리고 ‘위버멘쉬’로 분류한다. (여담이지만,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이 해당 책에서도 등장한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위버멘쉬라는 개념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 고통을 극복한 극복인, 혹은 초인 등으로 번역되는데, 해당 앨범 속 구분과 비유 또한 비슷하게 느껴진다. 과거 버벌진트가 ‘사자에서 어린아이로’라는 곡을 낸 것도 니체의 표현을 인용한 것이며, 해당 앨범 속에 버벌진트를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 약간은 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을 아끼지 않은 탓에, 본인이 뱉은 말로 인해 미움받는 모습을 ‘저주’ 혹은 ‘개’라고 불리는 것으로 표현한 ‘그 집안의 저주’와 ‘무덤 앞의 개’는 매우 인상적인 스타트다. 그의 행보를 계속해서 지켜봐 온 팬이라면 바로 이해가 될 부분이고, 그렇지 않다고 한들 하나의 소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전개이다.

이어지는 ‘죽어야만이’는 죽음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느 분야이건 간에, 죽은 뒤에도 기억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죽은 후에야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냐는 위험한 상상,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주와 같은 그를 향한 미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동시에 드러낸다.

전설로 불리는 누군가와 자신의 공통점들을 비교하며,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삶 속 시련도 자신의 저주와 비슷함을 얘기하는 ‘원숭이띠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지만,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임을 이야기하는 ‘그게 사람’ 또한 인상적이다. 특히나 ‘원숭이띠로부터’에서 약간의 싱잉을 시도한 점, 그리고 뒤이어 나올 ‘사수자리에게’와의 연결점은, 때로는 단조롭다는 평가를 받던 지난 앨범들의 구성과는 다른 차별점이다. 그런데도 이 앨범에도 단조롭다는 평가가 간혹 보인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누구나 삶 속에서 지치는 순간이 있다.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다가 미쳐가는 과정, 흔히들 무언가에 홀렸다고 말하기도 하는 모습. ‘귀신이 되어’는 그러한 모습을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 말한다. 이 곡의 특이점은, 사람과 귀신과의 구분을 분명하게 하였음에도, 귀신이 되어가는 것이 자의인지, 저주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설이라 불리던 존재들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되짚어보는 ‘전설들의 불빛’은, 몇몇에게는 다소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디스의 의미가 아니라, ‘전설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하나의 개념일 뿐’이라는 이 앨범의 핵심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수자리에게’는, 앞서 말했듯 ‘원숭이띠로부터’와 연결성을 띠고 있는 트랙이다. 손 심바가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한, 닮고자 했던 한 전설로부터 들리는 해답이다. ‘그가 사람들의 입에 담길 때, 이름이 달리 불리는 까닭 이제 알 것 같아, 같아, 같아’라는 가사는, 이 앨범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다.
마지막 트랙 ‘그들의 말로’에서는, 앞서 말한 존재의 유형 모두를 ‘그들’이라 표현하며, 그것들 모두 다 같은 사람임을 말한다. 특히나 앨범 내내 불분명하게 발음하던 ‘전설’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에 와서야 확실하게 내뱉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연결 짓는 모습, 그리고 그의 삶을 잘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도 재미있는 허구로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어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연출에 있어서 손 심바와 같이 엄청난 노력을 쏟았을 비앙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귀신의 말로’후반부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마치 무가를 연상캐 하였고, ‘사수자리에게’에서 ‘그들의 말로’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연결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사족을 붙이자면, 손 심바를 미워하는 몇몇 사람에게 약간의 원망 섞인 투정을 하고 싶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개라고 칭했으며, 자신을 향한 말들을 저주라고 표현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 심바가 이 앨범을 통해 이야기하듯, 저주에 걸렸건, 귀신이 되었건, 개로 불리건 간에… 우리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살과 살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사람 말이다.

9. 하트코어 (HEARTCORE)-HEARTCORE

전반부 세 트랙은 SUI(수이)가, 후반부 세 트랙은 Yosi(요시)가 담당하였는데, 크레딧을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모든 비트가 통일성이 있게 느껴졌다. 특히나 ‘Yuppie’에서 ‘Spike Lee’로 이어지는 전개는 곡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듯 느껴졌고, 비트의 연결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인트로와 아웃트로는 온전히 프로듀서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트랙을 배치하며, 참여한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HEARTCORE’ 발매 직후에 공개된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레디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문화에 조금 더 소비를 하고 관심을 갖고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발언이 이번 앨범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라 생각하는데, 참여진 모두가 패션에 관심이 있고, 이 앨범의 주제 또한 패션이지 않은가? 본인들이 좋아하는 패션이라는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음악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패션이라는 문화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음악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인터뷰에서 한 발언까지 언행일치 될 정도로, 근래 들어서 가장 통일성 있는 앨범이 아닐까 싶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1007605

10. Unofficialboyy-이수린Ackermann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을 주말 없는 삶에 비유한 ‘Friday’는, 이어지는 ‘weeknd’가 있기에 더욱 빛이 난다. 특히나 선 공개된 ‘weeknd’의 훅이 여성과의 주말을 원한다는 내용이기에, 본격적인 앨범 감상 이전에 트랙리스트만 봤을 때는 ‘Friday’는 돈에 관한 클리셰가 가득한 전형적인 파티 음악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가 쉬웠다. ‘weeknd’에서는 ‘그물,덫,발사대기,포획 반응 봤지/쇼미더머니 10 기회 맞지/그래 왔지 온 기회를 잡지’라며 이전 작에 대한 반응을 자랑하는, 그리고 방송에 나가는 것을 자랑하는 모습 전후로 ‘Shawty wanna go on a weekend’라는 훅이 나온다. 그렇기에 앞선 벌스는 여자 앞에서 부리는 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선 트랙 ‘Friday’에서 주말 없는 삶을 드러낸 만큼, ‘weeknd’의 가사 전체가 진심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당장에는 허구인 이야기지만, 곧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2183120

11. IndEgo Aid-Evp : Earth Venturing Poetry

앨범 설명에서 알 수 있듯, 해당 앨범은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Vēn . Vīd . Vīcī’, 우리 말로 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표현을 약간 비틀어서 A Side는 ‘Vīdī’, B Side는 ‘Vēnī’이다. ‘Vīc ’를 나타내는 다음 파트의 앨범이 발매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나의 승리를 이미 보고 왔다’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띄고 있다는 점에서 ‘Vīcī’’파트가 과연 발매될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그려진다.

첫 트랙 ‘들로리안’은 영화 백 투 더 퓨쳐 속 타임머신에서 따온 제목에서부터 해당 앨범의 주제에 충실한 트랙이다. 앨범 전체에 다른 래퍼들의 가사에 대한 오마쥬가 많은 편이지만, 이 곡에서는 이미 여러 래퍼에게 인용된 ‘자, question 4. 빈지노 다음 누구’라는 질문의 해답이 본인이라 말하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미 보고 왔다는 설정이기에, 그 자신감이 더욱더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첫 트랙을 지난 뒤 A Side에서는 내내 씬에 대한 비판과 자신이 그에 대한 해답임을 이야기한다. ‘쓰레기는 발견한 사람이 먼저 치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를 어찌 아는가?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혹은 허리를 굽혀 줍는 것이 싫어서. 다양한 이유로 쓰레기 줍기를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힙합 씬 또한 비슷하게 느껴진다.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서로 눈치 보기 바쁘다. 결국은 ‘내가 먼저 발견한 건가?’싶은 사람이 나서서 문제점을 얘기할 뿐이다.

‘얼음 냉장고’에서는 자신의 머릿속을 냉장고에 비유하며, 얼음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힙합에서 얼음이라 하면 보석을 얘기할 수 있지만, 이 곡에서 얼음은 다양한 의미를 띄고 있다. 그 보석들을 살 수 있을 만큼 부를 가져다줄 생각이 될 수 있고, 변질되어버린 씬을 개혁할 만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걔넨 꼭 이 바닥 구멍 같애서 거기다 채워 내 얘길 그 출처는 얼음 냉장고’라는 가사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이어지는 ‘PLZ’와 ‘난너무솔직해서탈이야’에서도 계속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PLZ’라는 곡은 특정 인물들에 대한 디스로 주목받은 곡이지만, 그 이전에 ‘난 내 세대가 싫어’라는 가사 뒤에 이어지는 본인 세대를 향한 비판이 주가 되는 곡이다. 그리고 해당 라인의 진 주인공이자 피쳐링으로 참여한 스카이민혁의 선배들을 향한 ‘그저 뭘 보고 배우라는 거야’라는 분노 섞인 일침이 곡의 가치를 더해준다.


‘Morning Glory’에서도 여전히 씬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동시에 ‘난 내가 맞다고 배우고 믿은 것들을 해나가는 단계 위에’라 말하며 그저 본인의 것을 하고 있을 뿐임을 나타낸다.
그리고 해당 파트의 타이틀이기도 한 ‘Too Dirty’는 드럼 소리가 강조되는 비트 위에, 참여진 모두가 나쁘게 말하면 ‘Dirty’, 좋게 말하면 ‘Raw’한 가사들을 뱉는다. 어찌 보면 스웩 벌스로 채워진 트랙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카이민혁의 벌스 중 ‘신이 억 명 있다고 이 파이가 동날까’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해당 파트 내내 일관되게 이어지는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루 만에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진 클러치의 벌스는 확실히 날것의 느낌이 강했고, 마무리를 담당한 딥플로우는 베테랑의 여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전 앨범들에서도 보여줘 왔던 시리즈이자, 외계인이라는 본인 특유의 컨셉을 강하게 유지하는 ‘Ieo3’속에서도 씬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쟤넨 쿨해서 할말이 없지 너무 쿨해서 rhyme까지 없지’라는 비판에 타당성을 더하기 위한 것인지, 화려한 스킬 속에서도 라임이 빽빽한 랩을 들려주고 있다.

이어지는 ‘Touché’는 우선 제목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펜싱에서 서로 누가 먼저 찌른 것인지 모를 팽팽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먼저 찔렸음을 인정하는 의미이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경쟁적인 특성 때문에 스포츠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지만, 해당 곡에서 인정하는 패배는 패배보다는 거부에 가깝다. ‘나를 고립 쌓여버린 많은 오해, 모으네 간절히 두 손 아니 걍 좋을대로 해’, ‘내가 그저 바랬던 건 저 사람들 모두가 착했으면’같은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앞선 곡들에서 본인이 비판하던 이들, 혹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본인을 비난하는 이들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태도이다.

그렇게 자발적인 패배 후 이어지는 것은, ‘Lazer’라 이름 붙였지만, 칼끝처럼 날카로운 트랙이다. ‘힙합은 찐따들거고 빵점인 내 사회성’이라는 가사 하나가 지난 모든 트랙을 한 줄로 설명하는 듯 느껴지며, 해당 트랙 속에 섞여 있는 분명한, 그리고 불분명한 디스를 하게 만든 분노를 설명하는 듯했다.

A Side의 마지막, 그리고 B Side와의 연결점인 ‘이어서’는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으며, 정제되지 못한 생각들을 뱉고 있다. 이미 ‘보았노라’며 얘기하던 앞선 트랙들과는 달리, 해당 트랙을 통해 오히려 미래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B Side는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줘 왔던, 외계인이라는 기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트랙인 ‘유학’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유학을 하러 간다는 의미이며, 그렇기에 두 번째 트랙이 ‘지구에서만난우리’라는 제목이 붙을 수 있었다. ‘지구에서만난우리’는 추상적인 가사가 가득한데, 지구인은 할 수 없는 상상이라는 소재가 아닐까 싶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ㅗ ㅏ ㅗ’또한 앞선 트랙에 이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개연성이 이어지지만, 결국 핵심적인 주제는 래퍼로서의 성공을 향한 갈망이다. A Side보다 B Side는 과거의 시점이기에 ‘~~말거야’, ‘~~낼거야’같이 미래를 향한 포부는 충분히 당위성이 있다. 다만,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두 파트로 나눈 것인지, A Side에 들어가지 못할 노래들을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 엮은 것인지는 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점은 B Side 내내 이어지는데, 스웩 가득한 ‘V’와 ‘Flx' 사이에 사랑 노래인 ‘여름일’과 ‘Dive’를 배치한 구조는, 개인적으로는 난잡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Flx’에서 들려준 자기 과시는, 미쳐 티브이 화면 속에 담기지 못한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다소 난잡하게 이어지는 B Side는,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는 ‘불꽃놀이’로 마무리된다. 그래도 이러한 마무리 하나만큼은 인상적이다.

B Side 또한 분명 잘 만든 트랙들이 가득한 앨범이지만, A Side처럼 명확한 주제의식을 갖추고 있는 앨범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서사를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씬의 역사 자체인 몇몇 래퍼들과는 달리, 인디고 에이드의 입지는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루키이다. 그렇기에 이 앨범을, ‘두 파트 모두 명반이지’라 평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B Side를 통해 보이는 캐릭터와 음악성이 받쳐 주었기에, A Side에서 다루는 키워드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나의 승리를 미리 보고 왔다.’라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주장을 가지고 청자를 설득한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분명 해당 앨범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퀄리티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디펜던트 아티스트의 한계점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차라리 ‘여름일’등의 사랑 노래는 싱글로 발매하고, 하나의 파트에 집중하여 조금 더 큰 볼륨으로 발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2. 크루셜스타(CRUCiAL STAR)- Serenity, Courage, Wisdom

똑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느낀다. ‘과소평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KHA 시즌이 될 때마다 해당 부분에 대한 말들이 나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KHA에서는 아예 해당 항목을 제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그만큼 한 해에 나오는 앨범들은 많고, 적정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크루셜스타의 커리어는, 그 ‘과소평가’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 과거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소울컴퍼니의 맴버가 된 후에는 말랑한 사랑 노래만 낸다고 욕먹고(사실 이 시기에도 ‘비스듬히 걸쳐(Rebirth) 등의 명곡을 남겼다), 후에 발매한 믹스테잎들은 분명 수작이었음에도 커뮤니티 내에서의 언급은 적었다. 특히 그의 2집 ‘Maze Garden’은 명반으로 평가받지만, 판매량은 저조했음을 후에 동명의 무료 공개곡을 통해 얘기하지 않았던가.

이번 ‘Serenity, Courage, Wisdom’은 그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과 그 속에서 느낀 깨달음을 엿볼 수 있다. 앨범명과 동명의 첫 트랙에서부터 ‘돈, 명예 이전에 내가 갖춰야만 하는 것은 태도’라 말하며, 이어지는 ‘Mamba Mentality’에서는 열정과 노력을 강조한다. ‘GLADIATOR’의 가사는 끊임없는 자기암시처럼 느껴지는데, 여러 번 이어지는 변주는 비장한 기운마저 감돈다. 가끔 약한 마음을 먹게 될 때, 거울을 바라보며 ‘너 같은 건 내가 아냐’라 말하는 ‘No Coward Soul Is Mine’, 성공에 대한 상상을, 미래의 자신과의 통화로 비유한 ‘Berlin’ 또한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안개’는 분위기가 바뀐다. 가라앉는 기분, 취기로 보내는 밤, 불확실한 미래 등을 안개로 비유한 곡 속에서, ‘근데 만약 꿈이 내가 되면, 너를 기다릴게 푸른 해변에서’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humming’에서 자연스레 꿈속의 여인을 이야기한다.

뒤이어, 삶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돋보이는 ‘선은 어렵고 악은 쉽다’와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자기혐오 (2020)’으로 이어지는 전개 또한 인상적인데, 이처럼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도 통일성을 띤 앨범의 색채를 갖춘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선은 어렵고 악은 쉽다’에서는 ‘어제보다 더 나은 놈만 된다면, 충분히 아름다워’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더 나은 놈’은 그의 커리어 내내 여러 번 등장한 가사이다. 하나의 앨범뿐 아니라 삶의 태도 전체에 일관성을 유지하며, 앨범에 삶 자체를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자기혐오’는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이라 말하며 끝이 났고, 이어지는 ‘Shanti’에서는 ‘비우고 나서야 생각은 유연해’라 말하며 내면의 평화에 초점을 둔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앨범은, 기승전결의 순서보다는 결말을 먼저 말한 뒤에, 그 결말로 향하는 과정을 보여준 후 다시 한번 결말을 말하는 듯하다. 굉장히 특이한 구조다.

그의 커리어를 지켜본 팬이라면 더 큰 공감을 할 수 있을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 앨범 하나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훌륭한 단막극이라 할 수 있다. 10년 넘게 쌓아온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Wack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을 삶을 음악에 녹여낼 줄 아는 Real MC였음을 해당 앨범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하지 않았나 싶다.

13. 기리보이-avante

우선 앨범 커버를 들여다보자. 육지에서 떨어진, 물 위에 홀로 떠 있는 침대. 그리고 그 위에 누워있는 기리보이.
격리된 듯 살아가는 현재에, 우리는 모두 어딘가 외로이 떠 있는 존재처럼 비친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각자만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리보이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순히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닌, 씬 안에서의 위치에서 오는 외로움 또한 한몫한다. 이 앨범은 다양한 외로움의 정서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로 비유된다.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간다’등의 표현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비유를 통해, 누군가는 자기 삶의 태도를 정하기도 한다. 첫 트랙 ‘사자’속, ‘사자처럼’이라는 마지막 외침은, 험난한 삶을 헤쳐나가기 위한 그의 태도가 보이는 시작이다.
이어지는 ‘내일은 없다’는, 아티스트 기리보이의 외로움에 관해 얘기한다. '메마른 시장에서 우린 언제쯤에 꽃이 필까'라 말하며 과거를 고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뜨거웠던 세월 안에 얼어붙은 심장'이라 말하며 현재의 자신은 냉소적인 태도로 미래를 비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우리는 살아있다는 그 하찮은 썰과, 죽어간다는 것 중에서 대체 뭐가 정답'이라는 말로 이 비관론은 쐐기를 박는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릴보이와 나플라의 벌스 또한 굉장히 비관적인데, 특히나플라의 벌스 중 ‘난 그녀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의 기념품’이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과를 얻은 그들이지만, 이미지만 소모되는 상품과도 같은 모습이다.

이어지는 ‘그리고 돌아섰다’와 ‘추락’은 마치 서로 다른 화자인 듯, 각기 다른 감성을 얘기한다. 연인의 이별 과정을 그리며, 그 안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노래한 ‘그리고 돌아섰다’는, 현재형에서 과거형으로 문장이 바뀌는 것이 인상 깊었고, ‘아홉시 전 만나야 돼 그 전에는 금지/금 공연 두 번의 월요일 금 party’라며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일반인과는 약간 다른 규제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말하는 ‘추락’은, 차라리 평범해지기를 바라는 모습처럼 비친다.

가사 속 다양한 은유적 표현이 돋보이는 ‘우린 결국 그렇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불확실한 결말로 끝이 나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로 이어지는 전개 또한 흥미롭고, 여기서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짓는 극의 전개 또한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기존에 발매된 3곡의 싱글을 포함하고 있다.


헤어진 연인과의 이야기에 대해, 결국 ‘정리 안 된 우리 추억을 대책 없이 꺼내는’ 것 자체가 ‘엉망진창’이라며 결말을 내버리는 듯 느껴진다. 은유적인 표현을 잔뜩 머금은 채, 사랑은 곳 과학임을 말하는 ‘시공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체 이미 다른 사랑을 하는 여인에게 느끼는 질투와 외로움을 담아낸 ‘어쩌라고’로 이어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앞서서 이 앨범은 다양한 외로움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한 래퍼의 삶 속에 느껴지는 외로움, 연인과 헤어짐과 지난 사랑을 회상하며 느끼는 외로움, 짝사랑하며 느끼는 외로움 말이다. 펜데믹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리는 은연중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외로움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꾸며낸 이야기라도 말이다.

14. 창모-UNDERGROUND ROCKSTAR

지금에는 이 앨범에 대한 여론이 호평으로 점점 바뀌는 듯하지만, 앨범이 나온 초기에만 하더라도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호불호가 갈리는 주된 이유는 칸예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도 한몫하지만, 이전에 발매된 창모의 다른 작업물과 비교해서 더욱 높아진 수위의 가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래시계’ 속 ‘우리가 순수할 땐 할 때 Sex’같은 가사뿐만 아니라, 스웩을 드러내는 방식 또한 이전보다 직설적이며 날카로워졌다. 이전에는 ‘건물을 왜 사, 건물을 묶어논 다이소에서 지른 두터운 밴드’, ‘난 버거킹 토핑을 다 추가해 그만큼 돈 버는 중’과 같이 스웩 벌스 안에서도 위트를 섞어냈다면, 해당 앨범에서는 ‘경찰차 앞에 폼 좀 잡지 말어 거에 들어가 내 연 수억 세금이’와 같이 직설적인 어조로 얘기한다. 성공을 위한 노력, 성공한 뒤에도 계속해서 따라오는 미움들, 그리고 올라온 뒤에 위를 바라보니 더 높은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변화는 그렇게 찾아왔다.

리뷰 전문
https://hiphople.com/kboard/22129531

15. 화나(Fana)- FANATIIC

자신의 지난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작품을 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씬 안에서 그 사람이 가진 입지를 증명하는 셈이다. 가령, 데뷔 1~2년 차의 무명 아티스트가 그런 부류의 작품을 낸다고 한들,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2004년 ‘The Bangerz’로 데뷔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화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화나의 커리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커리어 안에서, 여전히 광인의 태도로 라임과 작품성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을 이번 ‘FANATIIC’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첫 트랙 ‘화석’에서부터, 자신을 다양한 수식어로 지칭한다. 영웅, 혹은 신이라고 말하지만, 마지막 구절은 ‘빛바랜 기억만이 남을 작자 미상의 시’로 마무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인트로 성격의 짧은 곡이지만, 이 곡 하나만으로도 씬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귀감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잊혀가는 구세대 래퍼 한 명.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여전히 역사의 일부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이어지는 ‘FANA Funk’ 속 저스디스의 벌스에서 드러난다. 저스디스는 두 번째 벌스를 통해 화나에 대한 샤라웃 뿐 아니라, 더콰이엇, 재지 아이비, 피타입 등을 동시에 샤라웃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미 문화유산’이라 말하는데, 화나를 비롯하여 자신이 열거한 전설들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스웩 가득한 벌스임과 동시에, 그만큼 씬 안에서 화나의 가치 또한 전설이자 문화유산임을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은 벌스가 아닐 수 없다.

수많은 말속에서 얻은 상처를 덤덤한 화투로 녹여낸 ‘얼룩말’,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어글리 정션을 회상하는 ‘광흥창에서’를 지나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GREEN Is The New Black’으로 이어지는 전개 또한 인상적이다. 남모를 상처와 추억으로 덮어버린 공간을 뒤로하면서도, 화나는 여전히 자신의 색을 지켜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해당 트랙에 참여한 모든 인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같은 색을 얘기하는 듯 보이지만, ‘녹색’이라 정의되는 그 색 또한 각기 다른 빛깔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 녹색은 특유의 독창적인 멋이고,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이념이며,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녹색으로 물들이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지점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사라져버린 역사를 뒤로한 채, 본인만의 색을 더욱 확고히 다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개식’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화석’이라 불릴지라도 그는 명백히 남들과 다른 ‘차이’를 갖춘 독보적 존재이며, 그 차이는 독자적인 경쟁력이자, 충분한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운율의 God, 나네. 넌 그냥 갓난애’라는 가사가 특히 인상적인데, 라임에 대한 화나의 자부심에 이견을 가질 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그 또한 때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허무, 이전 작 ‘FANAByss’를 통해서도 보여줬던 공황을 이번에는 그저 ‘담배가 모자라’다며 담백하게 그려낸다. 이후, 가진 것이 없던 때를 회상하는 ‘2810’으로 이어지는 전개 또한 자연스럽다.

자신을 게임 ‘둠’ 시리즈에 등장하는 무기에 비유하며, 다시 한번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BFG’는, 베이식의 훅이 더해지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We drop bombs like fanatics’이라는 베이식의 가사는 화나의 별명이기도 한 라임 폭격기를 연상시킴과 동시에, 곡의 제목과 주제하고도 어우러지는 표현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난 꽃’에서 꽃을 피울 씨를 뿌리는 위치가 된 지금을 되돌아보는 ‘발아’도 인상적이다. 어글리 정션이 사라진 것에 아쉬움을 표하는 힙합 팬들이 아마도 가장 큰 아쉬움을 느꼈을 지점이 발아와 같은 컨텐츠의 부재 때문이리라 생각되는데, 신예 래퍼들의 등용문과도 같았던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은 씬 전체로 봤을 때도 엄청난 손실이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여전히 ‘힘을 원해’라는 말을 외치는 화나의 모습으로 보아, 어떠한 형태로든 발아는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VIEW’에서는 팔로알토와 더콰이엇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화나의 모습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분신 8 뒷풀이서 화나랑 나눴던 대화. 그 에너지가 나를 여기로 이끄네, 한국힙합’, ‘그때의 동료들이 여전히 곁에, 이 무대 뒤엔 항상 우리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라는 구절이 그러하다. 사실 세 남자가 씬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각자가 지향하던 방향은 조금씩 달랐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셋 다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 있고, 더콰이엇의 벌스 마지막 구절처럼 ‘너무 먼 길을 왔지 Q, 보기 위해서 이 View uh’라는 말로 그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짐작게 하는 것과 확실히 정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마지막 트랙 ‘요람기’는 직전 트랙들에서 미쳐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정리이자, 지난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다. ‘여기서 맺는 이 가사는 또 다른 새로운 막을 열까’라는 가사, 그리고 ‘요람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앨범의 마무리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여는 서막이다.

혹자는 그의 1집 ‘Fanatic’과 비교하며, 이번 작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광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런 지적 역시 타당하지만, 이번 작의 제목은 지난 시간 속 상처와 방황을 맛본 뒤에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그의 태도 자체가 광인에 가까운 모습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시에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기 위해서 ‘FANATIIC’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 또한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광기 넘치는 화나의 모습이 그립다면은 1집을 들으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화나는 커리어 내내 계속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왔으며, 이번 앨범도 2탄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을 보여줬다. 그리고 해당 작품 마지막에는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고 있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과연 또 어떠한 변화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