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한국사람-화이트 : DABDA

앨범 리뷰

앨범리뷰)한국사람-화이트 : DABDA

죽음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지만, 작품 속 죽음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서 작품의 성질은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살인자의 입장에서 묘사된 작품이라면, 작품은 살인자의 잔인함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죽이고자 하는 화자가 주인공이라면, 화자의 심리 변화와 표정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시각적으로는 전자가 훨씬 잔인하게 다가오겠지만, 때에 따라 후자가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런 소재의 작품을 다루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이 글로 인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이 작품을 들어보게 될 청자들 모두에게 혹여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은, 어디까지나 예술은 예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사람은 예전부터도 죽음을 소재로 한 곡을 종종 내놓았다. ‘당신은 자살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파격적인 훅을 선보인자살소년’, ‘서늘한 곳으로 가는걸까?’라는 은유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666’ 등 말이다. 이번 앨범화이트 : DABDA’는 한층 더 노골적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sabeth Kübler-Ross)가 주장한 죽음의 5단계 이론에서 차용한 앨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앨범은 총 5단계로 구분된다.

 

#1 어느휴식지구는 지옥이다, 혼자만의 공상 뒤에 이어지는 독백과 같다. ‘가짜는 있는 척하지만 가짜’, ‘씨발년이랑 씨발놈들만 내 곁에 있네/나는 좀 쉴래라며, 자신이 처한 상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린다. ‘우린 서로 믿지 않지만, 필요할 때 이 지구는 지옥같아라는 가사도 같은 맥락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자기방어에 가깝다. ‘지구는 지옥이다라는 제목은 이미 결론 지어버린 명제처럼 보이지만, 가사 자체는 온갖 비유와 질문이 가득하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아직은 죽음에 대한 고민의 단계로 보이지만, 이어지는 트랙은 제목부터사망신고라 단언한다.

 

제목만 봐서는 아름다울 것 같은러브스토리에서는, 분노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를 살짝 흘린다. ‘그녀의 모습은 탑에 사는 아름다움이라는 도입부는 언뜻 라푼젤과 같은 동화를 연상시키지만, 애초부터 닿을 수 없는 존재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끝은 서로를 죽이지라며 결말을 예고해버리는 이 이야기는, 후에 더욱 자세히 다뤄진다. 그리고 자기혐오와 의심이 가득한 ‘necromancer(‘, 배신감과 증오를 전면에 드러낸 ‘Let's play!’가 이어진다.

 

특히나 ‘Let’s play!’ '마약처럼 same, 나는 그냥 맹, 바람처럼 쌩, still u want a play?'라는 구절이 인상적인데, 짧은 문장들만으로 이 곡의 주제를 모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한국사람의 리릭시스트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そんな バカ な!?(그치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에서는 계속해서 증오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만, 이미 제목에 답이 나와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는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다.

두 번째 파트의 끝을 알리는 ‘#2날아다니는스파게티괴물!’에서는 동요 같은 밝은 멜로디 위에 음울한 목소리로, 비교적 말끔히 정리된 생각을 말한다. ‘내 눈 속엔 그저 우리의 모습은 똥 싸는 괴물 같아

 

작품 속 화자는, 생각이 정리된 후에 오히려 더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진짜로 진짜에서는 대놓고 자해를 묘사하며, ‘난 다음 계단 단계에 다가가 있어라 말한다. 투신을 암시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생각 끝에 내버린 결론이 결국 자살임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옥(8)’에서는개병신취급받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고통을 즐기는 듯 보인다. 심지어는 자신의 모습을 멋지다고 말하며, 슬픔이 멈췄다고까지 말한다.

invisibility cloak(투명망토)’에서유체이탈 하는 방법(OOBE)’까지의 전개 또한 충격적이다. ‘invisibility cloak(투명망토)’에서는 '삶 힘든 네게 나는 수업, 약쟁이들에겐 클럽'이라며, 무엇인가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그 모든 이들보다도 자신이 불행한 상태임을 말하며, ‘수도승에서는 의미 없는 소비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 남들 눈에는 헛짓거리로 보이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도를 닦는 과정처럼 표현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유체이탈 하는 방법(OOBE)’에서정신이 나가기 전에 나 잡아야 하는 걸 알지만이라고 말하면서도 자해를 감행하는 듯한 묘사를 보인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듯 보이는 이야기는, 다시 사랑을 찾는 과정을 통해 희망적으로 전개된다. ‘#3겨울연가ㅠ에서는손 닿일 듯한 하늘 별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앞선러브스토리에서 탑과 별 등에 비유하여 닿을 수 없는 거리로 묘사하던 그녀가 이제는 비로소 닿을 듯 가까워졌다.

sledding^^’에서는그녀는 눈썰매, Yeah I need your service’, 여러 가지 비유를 섞으며 자신이 그녀와 어울리는 적임자임을 어필하지만, ‘세상은 장난꾸러기 도둑이래요(mischief theif)’에서는 그녀를 붙잡는 것을 금방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친구로도 안되니에서는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이트데이 demo’에서는 또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만, 결국 그 끝은탈진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쏟은 뒤 결국 나름의 결론을 얻어낸다. ‘사랑만이 축복이야라는 결론, 그리고 ‘tundra’난 처음에, 날 처음에다 뒀어야 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을 처음에다 두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첫 단계라는 것이다.

 

이어지는은 이 앨범에서 가장 솔직한 트랙이다. ‘벗어나고 싶지 난 죽기는 싫어라는 고백.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자해와 자살에 대한 암시를 계속 보이던 앨범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야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다. 죽기 싫다는 자기 고백 후 주의를 둘러보니, 진정 자신의 밑바닥까지 사랑해주는 엄마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다.

‘오..에서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을 해도 엄마의 눈에는 아직 어린 애라는 것을 알아챈 뒤, ‘#5엄마는착한브라키오사우르스에서는 반찬 투정을 하는 어리광을 부린다.

여기까지만 보면 희망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 듯 보이지만, ‘내 친구는 자살하기 전날 우린 웃을거래요 나쁜 것도 모르겠고라는 구절을 통해, 여전히 자살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는 듯 보인다. 오랜 고뇌 끝에 얻은 나름의 깨달음이지만, 그것이 다시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겪었던 과정이기에, 설령 그런 과정을 다시 한번 겪을지라도 첫 경험과는 다르게 의연한 대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 정신과 환자의 진료기록, 혹은 일기장을 들춰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앨범이다. 때로는 잔혹하고, 때로는 밝은 면도 보인다.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감정의 끝까지 추락했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끝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이 작품의 결말도 결국 마침표를 찍지 않은 상태로 끝난다. 듣는 이에 따라서 이러한 결말이 주는 무게감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누군가는 희망을 보았을 수 있겠고, 누군가는저러다 또 망가지고 말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할지도 모른다. 이후의 과정이 무엇이 되었건, 이 앨범은 그저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더욱더 깊게 들어가게 된다면, 아티스트와 리스너의 관계가 아닌 개인 대 개인의 영역까지 침범하게 될 것이다. 글의 첫머리에서도 밝혔듯, 이런 작품을 다루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글의 결말 또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사람의 다른 음악들도 마찬가지지만, 이 앨범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어쩌면 한국사람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 또한 분명할 것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앨범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앨범이었다.

 

https://youtu.be/IzvjRPyad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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