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얼돼(Errday Jinju)-B.612

앨범 리뷰

앨범리뷰)얼돼(Errday Jinju)-B.612

얼돼가 첫 믹스테잎을 발매한 것이 2013, 첫 데뷔 싱글을 낸 것이 2015년이다. 나름 먼 길을 돌아왔고, 비교적 최근에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9년에 발매된 첫 정규살아 (SARA)’는 입소문을 타며 리스너들의 호평을 받았고, 2020 한국힙합어워즈 올해의 과소평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계약이 종료되었지만, San E(산이)가 설립한 ‘FameUS’라는 레이블에서 활약하기도 했었다.

 

가시적인 성취와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은 뒤, 그가 내민 EP ‘B.612’ 는 자신의 첫걸음을 돌아보는 작품이었다. 소설 속 어린 왕자의 고향에서 따온 앨범의 제목뿐 아니라, 앨범 소개에서도 어린 왕자 속 대사를 일부 인용했다. 앨범 커버 속의 모습도, 별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노란 머리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이렇게 얼핏 보기에는, 이 앨범은 컨셉추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첫 트랙두 평 (Flophouse)’, 제목과 첫 가사에서부터 그가 고향 행성에 비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야망, 혹은 독기로 가득하지만, 그것조차도 그 두 평 안에서만 허락되던 시절. 그리고 이어지는기억해 (Memories)’똑같아 (Lane)’에서는, 그때와는 많은 것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며, 마음가짐은 똑같다고 얘기하는 듯하다. 특히나똑같아 (Lane)’의 마지막 가사, ‘이젠 다른 꿈속에 나를 가둘래 더 외롭게라는 구절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같은 자신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야망을 품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굉장히 모순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었다.

 

이러한 모순된 표현은나이롱 (Windbreaker)’에도 나오는데, ‘평범한 느낌으로 특별해지고 싶은이라는 말은 얼핏 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난 뭘 꿈꾸고서 있던 걸까? 바뀌는 계절 속에 뭘 입는 걸까?’라는 두 줄의 가사로 표현된 것은, 음악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젊음에 대한 방황을 그린 것일지도 모른다. 앨범의 제목에서부터 소설어린 왕자에서 가져온 것은, 자신의 방황을 여기저기를 떠도는 어린 왕자의 모습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소설이 그러하듯, 이 앨범은 추상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직접적인 표현은 첫 트랙인두 평 (Flophouse)’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소설 속에서도 어린 왕자의 고향 행성만큼은 직접적인 이름으로 거론되는 것과 비슷한 이유라 생각된다.

 

마지막 트랙인젊음 (Youth)’, 사실 마지막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속 어린 왕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죽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물론 작중에는몸을 가지고 돌아가기 어려우니, 몸을 버리고 가는 것이라고 언급되지만, 작품이 아닌 현실 속 관점에서는 죽음과 다름없을 것이다.

 

이 앨범 속 마지막 트랙이 마지막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그냥 느껴보고 싶어 온전히 나의 젊음, 그때 그랬었지 말고 지금이라 말을 한다. 지난날을 추억하며, 마음속에 담아두지만, 여전히 삶이라는 여정은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피쳐링으로 참여한 ZENE THE ZILLA(제네 더 질라) 의 가사 중, ‘죽음은 삶이란 불에게 있어 기름이라는 가사가 굉장히 인상적인데,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타오를 삶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젊음을 흘려보낸 후에도, 이 앨범이 끝난 후에도 얼돼의 삶 속 여정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분명 끝까지 읽고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랜 여운이 남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책은, 시간이 지난 후에 한 번쯤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도 그럴 것 같다. 정확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밤잠을 설치게 될 것 같다. 얼돼 본인이 겪어온 개인의 삶 속 일부를 그리고 있지만, 공감 가능한 지점들이 많은 앨범이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Fredi Casso(프레디 카소)가 깔아놓은 비트 위에서, 마치 동화책을 읽는 듯이 나긋나긋한 어투로 풀어낸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오는 앨범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굉장히 컨셉추얼한 것처럼 비칠 여지가 다분하지만, 이것을 컨샙이라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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