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얼돼-살아

앨범 리뷰

앨범리뷰)얼돼-살아

지금까지 얼돼에 대한 기억이라고 한다면,딸기스웩이나 가즈아 등 유머러스한 뮤비 몇편과 어글리정션 라이브 영상 몇 개 본 것이 전부였고,‘잘 하기는 하고 유머러스하긴 한데 크게 끌리지는 않는뮤지션이었다.

이번 앨범도 솔직히 랩하우스 온에어에서 보여준 라이브 클립과,입소문으로 접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별 기대감이 없었지만,생각보다 엄청난 앨범이었다.

올 해 이 앨범을 빼면 섭하겠다 싶을 정도의 퀄리티랄까.

 

첫 번째 트랙 안내문은 인트로 트랙이니만큼,길이나 가사도 굉장히 짧았다.

그렇지만 안내문이라는 제목처럼,친절하게도 이 앨범의 주제들을 모두 설명해주는 가사 같았다.

이 앨범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미리 말하자면,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트랙이니 꼭 기억해 두기를 바란다.

 

두 번째 트랙 초콜릿은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로 주목을 받은 곡이다.

사랑과 돈을 초콜릿 같다고 비유하고 있는데,

썩을 이는 썩겠지요 난 그냥 한입 베어먹을래요라는 가사에서 이 곡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사랑과 돈,그리고 그 이외의 가치 있는 것들.그것들을 너무 탐했다가는 결국 탈이 나고야 만다.

그래서 적당히 한 입 베어먹고 말겠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곡 자체도 훌륭하지만,이 곡의 뮤직비디오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 초반에 초코 케이크에 주사기로 약을 주입하는듯한 장면,테이블 가득 초코 케이크로 채워넣은 장면,남성의 얼굴에 묻은 초콜릿을 여성이 핥아먹는 장면 등.

초콜릿이라는 장치로 비유된 그 모든 것들.그것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탐욕이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음을 훌륭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KHA 올해의 뮤비 후보에 올라가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세 번째 트랙 버뮤다.

성공에 대한 집착,혹은 작품을 남겨야겠다는 예술가의 고뇌가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렇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고뇌하는 나머지 머릿속만 혼란하고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뿐,결국 돌아보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시간만 갈 뿐이다.

살아가는 것은 모두 다 비슷하기에,그 고민에 대한 대상이 다를 뿐 이러한 고민은 누구나 다 한다.

그렇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자기 자신,그리고 이 곡을 듣는 청자들에게 던지고픈 메시지는 결국 이 곡의 마지막 가사이다.

 

증오와 사랑 사이 어딘가에서 춤

바보 같은 말과 현명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춤

이젠 거기서 벗어나

 

네 번째 트랙 주인은 성공한 뒤의 모습들을 상상하며 즐거워 하는 듯 했다.

1절의 가사에서 외제차를 타고 시계방에 놀러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가,2절에서는 그 행위들에 대하여 외제차를 타겠지,시계방에 놀러 가겠지 등으로 표현을 바꾼다.

1절에서는 마치 이미 이룬 것처럼 얘기를 하지만,2절에서 표현을 달리 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화자의 공상임을 청자에게 알렸다.

그리고 또,썩은 이를 언급하며 두 번째 트랙인 초콜릿과도 연결을 시키는 유기적인 구성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섯 번째 트랙 지팡이는 철 없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트랙이었다.

특히나 마지막 나레이션(싱잉의 형태를 약간 갖추고는 있지만,나레이션에 가깝다고 생각된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랑과 돈에 대하여 계속 노래를 하고 있는 이 앨범에서,가장 긍정적인 형태의 곡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에 대한 사랑,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도 결국 가족에게 있음을 말하는 트랙.

결국 내 삶의 주인은 나 뿐만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여섯 번째 트랙 우주로 보낼 편지는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트랙이다.

살아가다 보니,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앞으로도 더욱 많을 것이고.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 하나 하나,내가 성공한 뒤에도,그리고 내 삶의 마지막까지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에서 노래하는 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고,정말로 그 한 사람을 위한 노래일지 모르겠으나..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었음에도 감정이입이 되는 트랙이었다.

얼돼의 보컬이 굉장히 호소력이 있는 탓이었으리라.

 

일곱 번째 트랙 미세먼지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트랙이었다.

마스크를 쓰며 표정을 숨기며,오히려 마스크를 벗고 거짓 웃음을 지어야 하는 맑은 날을 두려워하는 현대인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냉철함을 노래했던 버벌진트의 Seoul state of mind가 떠오르기도 했지만,비슷한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달랐다.

버벌진트의 가사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냉철함들을 열거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 또한 냉철해져야 한다는 것을 노래한 반면,얼돼의 가사는 냉철해진 도시 속에서 사실 그렇지 못 한 존재들이 애써 자신을 숨기고 연기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한 듯 했다.

곡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가사가 굉장히 훌륭한 가사라며 이전에 팔로알토가 얘기한 기억이 나는데,그런 면에서 얼돼의 가사는 그 훌륭한 가사안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여덟 번째 트랙 겁쟁이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가사이지 않을까 싶었다.

꿈을 가진 자신을 부러워 하는 이들에게,돈 버는 니가 더 부럽다고 말하는 모습도 굉장히 공감이 되었고,죽음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은 더 살고 싶어졌다는 표현도 많이 공감이 되었다.

수필과도 같은 가사이지만,이제서야 얼돼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어졌다.

 

아홉 번째 트랙 탈춤은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이 오버랩되는 비트와 래핑이었지만,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많이 달랐다.

가사 자체는 오히려 직전의 트랙들과 이어지는 듯 했고,그 동안 가면 쓰고 연기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스스로의 자유를 찾겠다는 내용의 곡이었다.

거짓된 사회에서 모순적인 삶을 살아왔고,어쩌면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곡에서만큼은,그런 것들 다 집어 던지고 신나게 춤을 추는 듯 했다.

사실 신나는 건 아니고,억압된 무언가를 터트리며 느끼는 일시적인 해방감일지도 모르겠지만.

 

열 번째 트랙 맺음말.

제목은 맺음말이지만,결국 이 앨범 전체에서 얘기하던 고민들을 끝맺음 짓지 못 한 채로 앨범이 끝이 난다.

돈 얘기 그만하고 음악 얘기만 하고 싶지만,머릿속에서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 곡의 마지막에,첫 번째 트랙인 안내문에서 뱉어냈던 물음들이 다시 되풀이되며 곡이 끝난다.

사실 스스로도 아직 답을 내리지 못 한 것이고,아마 영원히 답을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이 앨범의 주인이자 곡들의 화자인 얼돼 본인에게도 마찬가지이고,이 앨범을 듣는 청자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결국 삶에는 정답이 없고,개개인의 가치관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므로,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뇌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이 앨범에서 그려지는 얼돼의 모습은 모순덩어리이며,본인도 그것을 잘 알기에 계속해서 고민하는 모습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 앨범의 구성에서 가장 소름 돋는 점은,첫 트랙의 영제는 How to listen,마지막 트랙의 영제는 Now you listen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듣는지 설명한 뒤 마지막에는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물으며,결국 처음에 던진 질문들을 다시 하며 끝맺는 구성.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진,케시미어 같은 구성의 앨범이었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명제들을 끊임없이 던져주었고,자신의 경험을 섞어가며 그 명제들에 대한 풀이 과정을 나열한 듯 했으나 결국 자신도 풀지 못 했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결하지 못 한 명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타인의 삶이나 나의 삶이나 결국은 크게 다를 것은 없다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그것이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그리고 음악 등 여러 예술작품들에 공감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올 해 정말 많은 앨범들이 쏟아졌고 그 중 명반이라고 불릴만한 앨범도 많았지만,이 앨범도 나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명반이었다.

5점 만점에 4.3.

https://youtu.be/iuozAQH1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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