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리뷰)오도마(O'Domar)-밭

앨범 리뷰

앨범리뷰)오도마(O'Domar)-밭

예명을 가진 아티스트가 그 예명을 바꾸거나,이름에서 무언가를 뺀다는 것은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미 알려진 이름의 값을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어찌 보면 새로 시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비록 본선 진출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으나 쇼미7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던 그였지만,본인의 이름이 다른 사람들이 발음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만은 아닐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에서 오도마라는 예명으로 축소시켜 버린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름까지 바꿔가며 낸 이번 앨범은,첫 정규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졌기에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크루원들은 싸인히어라는 오디션 프로에 다시 도전을 한 상황까지 생각해보면..이 앨범에 제법 많은 것을 걸지 않았나 싶다.

 

첫 트랙 장미밭.

이 곡은 비틀즈의 명곡 Strawberry fields forever를 샘플링함과 동시에,수 많은 래퍼들의 벌스를 래퍼런스했다.

이 앨범의 제목이자 주제인 ’.

최근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를,자신이 사는 세상을 에 비유했으며 그것이 힙합씬이 될 수도 있고,넓게 보면 하나의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트랙이 의미하는 것은,힙합씬이라는 밭에 발을 들이기 전에 가져왔던 환상에 대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 많은 선배 뮤지션들의 가사를 들으며 나도 그들처럼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지만,이 밭을 일구어가면서 그 환상이란 것이 이 앨범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는 과연 얼마만큼이나 남아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이 곡 만큼은 작사작곡의 표기가 없다는 점이다.

저작권상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이 곡은 어디까지나 래퍼런스 오마쥬가 가득한 곡이기에,자신을 저작권자로 표기하지 않는 것이 그 선배 뮤지션들에 대한 예우였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트랙 비정규직.

이제 겨우 두 번째 트랙임에도 불구하고,환상은 처참히 무너진 듯 했다.

제임스 키스가 읊조린 훅.

그것은 마치 오도마의 내면에서 나오는 마음의 소리처럼 느껴졌다.

일상의 소음 속에 묻혀 거의 들리지도 않는 혼잣말과도 같았고,모든 벌스가 다 끝난 마지막 부분에서야 제대로 된 훅을 들을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뒤로 배치시킨 사운드..

이것은 굉장히 훌륭한 장치였다.

 

세 번째 트랙 홍등가.

그저 잘 팔리고자 목을 매는 이들.

본인을 포함한 모두를 홍등가 불빛 아래의 창녀들에 비유한 가사.

날이 바짝 선 이 곡의 백미는 두 번째 벌스의 도입부이지 않았나 싶다.

CB Mass의 가사를 인용하며,’변화’ ’진실’ ’신념’ ’순정따위를 져버린 씬에 한탄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트랙 급.

이전 트랙들에 뱉어냈던 것들에 심히 괴리감이 느껴지는 곡.

모두 비정규직이자 홍등가의 창녀들과 마찬가지지만,그 와중에 서로의 급을 나누는 이중성에 대해 꼬집고 있다.

물론 그 모든 비유들 속에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닉하다.

그렇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기에,가사는 더욱 날이 서있고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다섯 번째 트랙 범인.

가벼운 행보에도 재물 복이 따라붙는 저들과 달리

지극히 평범하다는 게 나의 지난 5년 동안의 알리바이

라는 벌스만 봐도 알 수 있듯,범인이라는 단어를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며 시작한 길이지만,결국 자신은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평범하다는 것이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된 듯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태도.

결국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

 

여섯 번째 트랙 모독.

거짓된 기믹으로 돈을 버는 Wack들에 대한 질투심.

알바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현실.

둘 중 무엇이,그가 첫 트랙부터 꿈꿔왔던 장미밭을 모독하는 것일까.

 

일곱 번째 트랙 밭.

비정규직,홍등가와도 같았던 현실도.

평범함을 거부하며 급을 나누는 이중성 마져도.

스스로 꿈꿔왔던 장미밭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되돌아보니 결국,그것들조차 자신이 일궈낸 하나의 밭이었음을 노래하는 트랙.

 

여덟 번째 트랙 상실의 시대.

이 트랙은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이 들렸다.

시기,질투와 열등감 속에 뱉어놨던 모순된 언행들.

그 속에서 잃어간 것은,결국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보니,곡의 후반부를 이끄는 김오키의 연주가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홉 번째 트랙 가시밭.

아름답게만 그려왔던 장미밭은 막상 걸어보니 가시밭이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꿈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그의 모습.

그 모습이 멀리서 봤을 때는 아름다워 보이기에,많은 이들이 그것에 현혹되는 것이 아닐까.

 

열 번째 트랙 가시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찔러야만 하는 상황.

난 하고 싶은 말 다 했는데

이젠 너의 답을 원해 tell me what you have’

라는 마지막 가사가,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듯 했다.

누군가는 정말로 꿈꿔왔던 장미밭을 일궈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어떤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드는 앨범이었다.

막연한 환상,그 환상이 부정되었을 때 느끼는 자기 혐오와 시기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는 이유.

모든 트랙이 다 의미가 있었고,심지어 허투로 쓰여진 벌스 한 줄도 없었다.

모든 마디마디가 하나의 앨범을 완성시키기 위한 장치였으며,그 결과 너무나도 유기적으로 흘러간 하나의 서사가 완성되었다.

올 해 들은 앨범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앨범이었다.

5점 만점에 4.8.

 

https://youtu.be/vcAhEIUa0o0 

 

추신:물론 앨범이 얼마나 유기적인가를 따지는 것이 부질 없음을 지적하는 리스너들도 많고,한때 le 개념글에 그러한 내용이 올라갔던 것을 기억한다.

꼭 그런 방식으로 앨범을 이끌어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수 많은 리뷰어들이나 평론가들이 유기적인 앨범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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